사람들이 행복을 찾는 방식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공부하기도, 돈 벌기도, 애를 키우는 것도 무엇하나 쉽지 않은 사람들이 부와 명예, 성공보다는 커피, 자전거, 산책, 애완동물 등의 작고 일상적인 것들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겪는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듯 '소확행' 현상 이면에는 살기 팍팍한 사회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바쁜 일상이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소확행'이라고 표현했다. 1970~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로 경제가 침체되어 힘겨운 시기를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작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심리가 담긴 용어다. 이 책이 1986년에 발간된 걸 감안하면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지나 국내에 정착한 소확행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고 있다.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이처럼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좌절에 빠지기보다 실리를 추구한다.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기보다 제일 비싼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수입 캔맥주와 함께 마시는 걸로 만족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행복이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가 발간되자 자신만의 미슐랭 가이드를 만들어보겠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의 성을 붙여 '김슐랭 가이드' 혹은 '백슐랭 가이드' 등을 만들며 미슐랭 가이드 문화를 즐긴다.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내용 또한 변하고 있는데 자신의 부와 능력을 자랑하는 대신 자신이 성취한 소소한 성과를 올리는 식이다. 매일 공부한 내용을 인증하는 '스터디 인증'부터 자신이 조깅한 루트와 거리, 그리고 요리한 음식 사진 등을 올린다. 

이런 '소확행'은 전 세계적인 추세로 미국 브루클린에서 유행하는 '100m 마이크로 산책(Micro Walks)' 또한 소확행 현상 중 하나로 꼽힌다. 매일 공간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마이크로 산책은 말 그대로 '현미경 탐험'인데, 100m의 공간안에서 생겨나는 작은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1년 365일 카메라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하룻밤 만에 잎을 두 개 창조해 낸 클로버,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 바닥에 뒹구는 해바라기 씨앗 등 사람들은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관찰하며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유럽의 선진국에서 소확행은 이미 널리 퍼져있다. 고용한, 한적한의 뜻을 가진 '오캄(Au calme)'이란 말은 현실을 즐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평온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프랑스인들의 생활 방식을 의미한다. 이들은 집 앞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조용히 시간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스웨덴인들의 삶의 철학을 나타내는 '라곰(LAGOM)'이라는 말은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을 뜻으로 집을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허브를 기르며 공간을 소박하게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을 뜻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는 정서적 편안함과 안정감에 중점을 둔 덴마크인의 삶의 방식이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이들은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강렬한 기쁨도 결국 시간 앞에서 사그라들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에서 자주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바로 '행복의 원천'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소확행이 모든 일을 너무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도, 큰 행복을 바라지 말라는 패배주의 또한 아니다. '소확행'은 미래를 위해 계속 꿈을 꾸되 지금 이 순간의 행복 또한 놓치지 말자는 의미다. 미래와 현재의 균형을 잘 맞추며 현재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게 소확행을 누리는 방법이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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